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한국에서의 첫 월요일이다. 떠나기 전 책을 주문했더니 한국에 도착하는 날 집에 배달되어 잇었다. 택배하시는 분들이 정말 수고가 많으신 것 같다. 바로 주말이다 보니 처리해야할 일들은 잠시 미루고 책들을 꺼내들었다. 한글로 적혀져 있는 책이 어찌나 반가운지. 주문한 책 중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있었는데 나도 이제 마흔 중반이 다 되가니 저 사람은 젊었을 때 무엇을 읽었고 느꼈는지 궁금한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제작년인가 한국에 잠시 다녀갔을 때 내 책장을 다 정리했다.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가득든 모든 책들을 알라딘 중고시장에 팔았다. 알라딘이 폐기처리해버린 수많은 내 만화책들까지. 중학생이였을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던 것이. 유시민이 20년전에 읽었다하니 아마도 같은 책이 아니였나싶다. 나도 또렷이 기억나는 머리말이 있었던 책이였다. 유시민이 머리말과 시구절이 사라진 번역본들을 언급하길래 내 책장으로 가서 살펴봤더니 없다. 그 상실감이란. 몇번이나 남아 있는 책들을 둘러봤지만 찾을 길이 없다. 너무 오래되어 책냄새가 심하게 나는 책이라 분명 알라딘으로 보내진 않고 고물상으로 갔음에 틀림없다. 다 버렸을때의 홀가분함은 이제는 사라지고 같은 무게의 아쉬움만 커진다. 책보다는 음악이 내게 더 큰 의미인 듯. 내가 읽었던 모든 책들은 버렸지만 모아두었던 LP판들은 재생기도 없으면서 버릴 엄두도 내지 않았다.
주문한 세권 모두 유시민의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다 유시민은 정말 "품격"이라는 말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거의 매일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아닐까. 지금 하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생계의 수단이지 내 자아실현은 아닌지라 매일 한번은 고민해보는 주제. 어제 내 동생에게 "나는 한량으로 태어났어야해. 음악 듣고 글읽고 그림 그리고 서예 쓰고 정원가꾸고 사회에 재능기부하고 그렇게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러나 모두 취미일 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닌지라 매일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러운가라고 고민만 하면서 지낼 수 밖에. 그럼 일을 마치고 와서 취미 활동을 틈틈히 하면 안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매일 매일 공부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에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차라리 더 게을러져 버릴테야가 될 뿐. 중학생이였던 시절 혼자 문득 저녁놀이 지는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다 뜬금없이 찾아온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뒤로 유시민과 같이 내게도 죽음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나와 동행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끊임없이 나는 오늘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을까 물어보고 게으른 천성을 질책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하루밖에 일지도 모를 내 인생을 생각하면 조급하다. 나도 유시민의 나이가 되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한량짓이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40평생을 못찾았는데 그때가 되면 그처럼 찾을 수 있을까?
서울은 너무 피곤하다. 이제는 터전이 서울이 아닌지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국에 있을 때도 나는 회사일 이외에는 거의 하질 않았다. 전철타고 10시쯤 회사가서 일하다가 새벽에 모범택시타고 들어와서 몇시간 자다 회사에 다시 가서 일한지라 일상 생활을 한다는 피곤함이 더해져 앞으로 몇일은 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어머니 그림하고 정물화를 하나 더 그려놓고 가기 위해 이번에도 그림 도구들을 바리 바리 싸들고 왔다. 해야할 일들을 마치고 열심히 그려야할 듯. 아.. 드디어 인사동에 가서 먹물과 화선지를 샀다. 100장이면 몇달 쓰지도 못할 듯하니 다시 한번 가서 연습용 한지를 하나 더 사와야할 듯. 역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한량짓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속이 간질간질한 것이 너무 기쁘다.